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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구려의 찬란했던 문화

by 키다리 두애아빠 2024. 3. 20.

이전 포스팅에서 고구려의 정치, 경제적 특징을 살펴봤습니다. 혹시 이전 글을 못 보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한번쯤 보고 오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문화적인 측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의 장군총
고구려의 대표적인 유적인 장군총

고구려의 건축 방식

고구려의 유적은 평양과 통구 지방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왕궁이나 절 등 건축물로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없으나 고분의 구조를 통하여 당시의 건축 양식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특히 고분을 보자면 크게 돌로 만든 석총과 흙을 쌓아 만든 토총이 있습니다. 석총은 단어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돌을 피라미드식으로 쌓아 올려 만드는 양식입니다. 고구려의 장군총은 고구려의 가장 유명한 석총 유적입니다.

석총이 아닌 다른 방식은 겉을 흙으로 덮고 그 안에 관을 안치한 큰 석실을 만드는 토총 형식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유적은 평양에 있는 쌍영총입니다. 특히 큰 석실이 있는 구조와 그 안에 벽화를 그려 넣은 점이 고구려 건축양식의 특징입니다. 특히 석실 내부의 벽화는 지금까지도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들이 있는데, 이를 통해서 고구려의 건축술과 미술의 발전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

위에서 언급했던 고분 안에 있는 벽화는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는 신앙 사상이나 풍속, 의복 등을 설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게다가 삼국시대 미술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들의 인물화나 무용총의 무인, 가인 그림은 당시의 의복 양식이나 기타 풍속을 짐작하기에 충분합니다. 특히 강서대묘의 사신도에는 청룡과 백호 등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강인한 고구려인의 특징을 잘 표현한 훌륭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밖에 수렵총, 각저총 등의 고분 벽화는 고고학적으로나 건축이나 미술 학문적으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태양은 고구려의 아주 중요한 상징으로 건국신화에도 등장할 정도입니다. 벽화의 천장을 살펴보면 해와 달이 각각 동쪽 방향과 서쪽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방위를 표시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총 90여 종의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서 별자리 그림을 갖고 있는 곳은 22군데입니다. 특히 별자리 중에서도 고구려는 북두칠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중국이 북극성을 중요시했던 것과는 다른 고구려만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북두칠성을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종교적인 미술

고구려는 지역적으로 가까운 중국 북쪽 지방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불교 문화권으로 불상이나 불화 등에 영향을 많이 끼쳤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현대까지 보존되어 있는 유물이나 유적은 거의 없습니다. 현재는 단 두개정도만 보존되고 있는데, 이는 1940년에 평양 근처에서 발견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118호)과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19호)입니다. 금동여래입상은 고구려의 연가 7년이라는 연호가 새겨져 있지만 아쉽게도 이 연호가 어느 왕의 연호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연가7년이라고 새겨진 금동여래입상은 장수왕(재위 422년~491년)이나 문자명왕(재위 491년~519년), 또는 안원왕(재위 531년~545년)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1965년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또한 국내에는 없지만 중국에 보관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중국의 요령성 의현 지역에서 발굴된 고구려 금동불상도 있습니다. 이 불상에는 을유년에 제작되었다고 새겨져 있고, '대고구려국'이라는 국명이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을유년이 구체적으로 언제인지는 아직 학술적인 연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불상 자체가 중국에 있다가 국내에는 극히 최근에야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이런 훌륭한 문화는 일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구려의 화공과 학승이 일본으로 가서 불교문화를 전하는 데 크게 공현하였스브니다. 특히 승려이자 화가인 담징이 그린 벽화는 그 대표적인 일례이다.

 

 

고구려 음악 : 거문고

고구려인은 가무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문헌적인 고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양원왕때의 국상인 왕산악이 진나라의 칠현금이라는 악기를 개량하여 거문고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100여 곡을 작곡하여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고구려 부흥운동을 전개하던 고안승의 보덕국이 망한 뒤 남원경(현재의 전라북도 남원지역)으로 이주되는 과정에서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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