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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한 :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민족의 역사

by 키다리 두애아빠 2024. 3. 14.

많은 사람들은 고조선 시대가 지나가면서 신라, 백제, 고구려라는 삼국 시대로 이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삼국시대 이전에 삼한시대가 있었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한에 대해서 삼국처럼 잘 알지는 못 하는 것 같다.

 

삼한은 삼국 즉,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에 한반도에 자리 잡고 있던 마한, 진한, 변한을 일컫는 말이다. 이 들은 청동시대에 한반도의 중부지방에 자리 잡고 있던 진국에 그 뿌리를 갖고 있다. 이후 마한의 백제국이 백제로, 진한의 사로국이 신라로, 변한의 구야국이 가야로 발전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삼국시대 후기부터 삼한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말로 바뀌었다는 정설도 있다. 그래서 이들은 삼한이라는 말과 고구려, 백제, 신라를 말하는 삼국이라는 말이 같은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삼한 중 신라의 본거지 였던 경주의 대표적인 건물인 경주타워
신라의 본거지였던 경주의 경주타워

 

삼한의 설립

고조선이 자리 잡고 있던 만주 전역과 중국 대륙으로부터 전해져 온 금속 문화는 기원전 3~4세기에 현재의 우리나라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이러한 금속의 사용은 원시사회에서 부족사회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즈음시기에 되어야 비로소 한반도 전역에는 고인돌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도 북쪽 지역보다 남쪽 지역의 부족사회로의 발전이 늦었다고 알 수 있다.

 

기원전 2세기경 위만이 고조선을 공격하며 지배를 넓혀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 진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위만의 침략에 저항하면서 더 단단한 부족사회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 결과적으로 삼한이라고 이야기하는 마한, 진한, 변한이 부족사회로 발전했고, 이들은 연맹으로 위만의 공격에 저항하였다. 기원전 4세기가 되어서는 세력이 강해져서 오히려 먼저 영토의 확장을 꾀하기도 하고, 진나라와 직접 교섭하는 동등한 위치에 이르기도 했다.

 

삼한의 발전하는 정치

삼한은 원시부족사회에서 시작하였지만 점차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삼한의 정치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삼한은 정치와 제사가 분리된 제정분리 사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의 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내는 단군이라는 단어와 지배자를 뜻하는 왕검이 합쳐져 형성된 단어로 알 수 있는 고조선의 제정일치 사회와 구별된다. 삼한의 제사권은 족장이 가지고 있었고 이를 천군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군장이라고 하는 지배자가 별도로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한은 또한 노예제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삼한 전역에서 벼농사를 짓는 농경사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삼한 전 지역에서 관계시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기후 특성상, 5월에 파종하고, 10월에 수확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수확 이후에는 제천의식을 행하며 모든 씨족들이 음주 가무를 즐겼던 무리 생활을 하였다.

 

 

삼한의 문화적 특징

삼한은 제정이 분리된 사회였다. 하나의 지배자, 군장 아래에 지역 별로 제사를 관장하는 천군이 따로 있었다. 특히 마한의 여러 지역에는 소도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큰 나무를 세우고 북과 방울을 달아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는 요즘 시대에 간혹 보이는 동네의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에 방울과 천을 묶어두고 굿을 지내는 모습과 유사하다. 소도에서는 귀신을 제사하던 곳인데 이것은 단군설화에 나오는 신단수에서 이어져 온 것으로 만주 풍속의 신간과 같이 별도의 신을 상징하는 것이고, 북이나 방울은 신을 위한 악기의 일종이라는 것이 학계의 보편적인 해석이다. 이 신역에서는 도망간 죄인도 잡지 못 할 정도로 성스럽게 여겨졌다.

 

5월 파종 시기와 10월 수확의 시기에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이를 계절제라고 불렀다. 5월에는 씨 뿌리기가 끝나면 풍년을 기원하면서 신께 제사를 올리고, 여럿이 모여서 낮과 바에 노래하고 춤추었는데, 여러 명이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었다고 알려져 있고, 이는 현대사회로 이어진 전라도 지방의 '강강술래'와 경상도의 '칭칭 나네' 같은 노래의 기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0월에 수확을 끝마치면 다시 한번 수확의 감사를 드리는 제사를 지내며 축제를 벌이는데 이는 모든 농경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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