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 고구려라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전반적으로 살펴봤다면, 이번 포스팅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면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삼국의 역사가 궁금하시면 아래 글을 먼저 읽어보시는 걸 추천해드립니다.
고구려의 정치적인 특징
고구려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고조선에서 조금 더 발전된 정치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부족 연맹의 형태에서 일보 진화한 관료 체계를 갖춘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는 소수림왕 때 율령 정치가 시작되면서 그 기틀이 잡혀나갔습니다. 또한 시기적으로는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이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구려라는 국가의 초기 시절에는 왕 밑에 9개의 관료들이 있었는데 평양천도 이후로는 12등급의 관료 등급으로 정비되었습니다. 이는 대대로, 태대형, 울절, 태대사자, 조의두대형, 대사자, 소형, 제형, 선인 등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 관료의 이름에 있는 '형'이라는 글자는 현대 사회에서 쓰는 '형'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 듯이 연장자의 의미로 가부장적인 족장을 뜻하는 의미로 부족연맹 체제에서 국가 시스템을 갖추면서 여러 부족장 들을 흡수하면서 생겨난 것 입니다. 그리고 '사자'라는 것은 부족원들의 등용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또한 영토를 동서남북중의 5개 지역으로 나누고 이를 '5부'라고 불렀습니다. 5부에는 욕살이라고 하는 군관과 처려근지라는 행정관이 부임하여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여러 부족을 관리하였습니다.
고구려의 행정적인 특징
고구려는 5개의 큰 부족이 통합되어 생겨났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5부로 발전되었습니다. 하나의 부에는 여러 성주들이 있어서 이 성주들을 중앙에서 파견나온 욕살이 관리하게 됩니다. 그 밑으로는 몇몇 관료가 있었는데 이 관료들은 문인과 무인의 경계가 뚜렷하게 나누어 있지는 않고, 기존 부족들의 체계를 어느정도 인정하면서 관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의 군사 체계
고구려의 군사적인 체계는 한번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역사 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하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발해가 더 넓은 영토를 지배했지만,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에 고구려가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고 적겠습니다.) 고구려는 고대 국가임에도 중앙집권적인 군사 체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국내성, 평양, 한성의 3개의 주요 도시와 각 성에 상비군을 두었고, 특히 다른 나라와 인접한 국경지역에는 순라군이라고 하는 별도의 군대를 파견하였습니다. 직급으로는 대모달, 말객 등이 있으며, 상비군에는 경당이라는 청년 단체가 별도로 있었습니다.
또한 고구려는 발사할 수 있는 진화된 무기를 일찍부터 갖추었습니다. 군사들은 국궁과 각궁을 사용했고, 석궁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성을 방어할 때는 투석기를 활용하기도 하고, 도끼창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고구려의 보병들은 창과 칼의 두가지 무기를 갖추고 있었는데 창은 짧은 형대로 찌르기 보다는 던지기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기병들은 양날검을 칼자루에 넣어 지니고 다녔고, 미늘 갑옷을 입고 전투에 임했습니다. 또한 신발에는 뾰족한 송곳이 있어 적을 밟을 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고구려 사회의 특징
고구려 사회는 일반적으로 300~400만명 정도가 살았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넓은 영토의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군사적 체계에서 보았듯이 형법 체계 역시 강력했습니다. 반역을 꾀하거나 반란을 일으킨 자는 화형에 처했으며, 그 후에 목을 또 베었고 그 일가족들은 노비로 삼았습니다. 또한 적에게 항복한 자나 전쟁에서 패한 자 역시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남의 물건을 훔친 자들에게는 그 12배를 배상하게 했습니다. 이를 1책12법이라고 하며 이 형벌은 고구려의 정통을 계승한 부여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형벌 체계로 말미암아 고구려 사회에는 범죄가 아주 적었다고 전해집니다.
고구려 사회의 신분 체계
고구려 사회는 크게 4개의 계급으로 나누어져있었습니다. 귀족, 호민, 하호, 노비가 그 4 계급입니다.
나라를 지배하는 왕족을 비롯한 지배층은 귀족이고, 이들 대부분은 5부의 족장과 그 가족들이었으며 이들은 계급을 세습하며 국가를 운영하였습니다. 이들은 넓은 토지를 바탕으로 여러 관리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일반 평민들은 소족장 출신인 호민과 피지배계층인 하호로 나뉘었습니다. 대부분의 평민은 농민이었으며, 이들은 농사를 짓고,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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