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두 번째 도읍이었던 부여에는 백제의 유적지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오늘은 그 유적지들과 그 유적지에 얽힌 이야기들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궁남지
공남주는 충남 부여에 있는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인공 연못입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궁남지는 백제의 30대 왕인 무왕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 크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현재는 1만 평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3월에 왕이 왕궁의 첩과 함께 대지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 내용이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배를 띄울 정도로 크다는 것과 당시 백제에서는 궁남지라는 이름이 아닌 대지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31대 왕인 의자왕 시대에는 왕궁 남쪽에 망해정을 세웠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또한 '일본서기'에는 궁남지의 조경기술을 일본에까지 전파하여 일본 조경의 시초를 닦아줬다고 전해집니다.
정림사지
우리나라 사적 제301호로 현재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위치하고 있는 백제의 사찰 터입니다. 정림사에는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 등의 백제 유물이 남아 있다. 이는 각각 국보 제9호, 제108호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세계적인 유산입니다. 이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 유산으로 인정하여 등재하였습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총 8개의 유적지로 공주지역 2곳 (공산성, 송산지 고분군), 부여 4곳 (관북이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입니다. 정림사지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기고 나서 백제의 중심이 되던 자리입니다.
부소산성
부여의 부소산성은 대한민국 사적 제5호로 백제 사비도성의 배후산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입니다. 부여군 부여읍 서쪽에 위치한 부소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금강을 끼고 있습니다. 그 크기가 2만평에 달하고, 둘레는 약 2.2km 정도입니다. 부소산성은 산의 정상을 둘러서 성을 쌓은 테뫼식 방식을 취하면서 주변을 포곡식으로 한번 더 쌓은 북겹 산성입니다. 동서남문터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북문터에는 금강으로 연결되는 배수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 안에는 군창터와 건물터가 남아 있는데 이를 보아 유사시에는 방어의 목적으로 활용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영일루, 사비루, 고란사, 낙화암 등의 주요 유적들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부소산성은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긴 사비시대에 중심이 되는 산성이며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도읍이었습니다. 또한 백제 성곽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낙화암 (백화정)
낙화암은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나당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공격받을 때, 의자왕의 삼천궁녀들이 의자왕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백마강으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삼천명의 궁녀들도 과장된 것이고, 낙화암은 삼천 궁녀가 다 올라갈 수 없을 만큼 좁습니다. 낙화암 절벽 위에는 궁녀들을 추모하기 위해 '백화정' 정자를 건립되어 있습니다. 백화정은 육각형 평면을 가진 육모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천장에는 여러 가지 연꽃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고란사
부소산 북쪽의 백마강변에 있는 사찰입니다. 고란사 바로 위쪽에는 낙화암이 있고, 절 뒤쪽으로는 고란정이 있고, 그 위쪽에 고란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고란사는 백제 말기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의 법당 건물은 조선 정조 시절에 은산의 승각사에서 옮겨온 것으로 백제 때는 없던 것입니다. 상량문에 의하면 조선 정도 21년에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연화문을 새긴 초석을 먼저 자리 잡고, 그 위에 원형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근데 그 초석에 새긴 연화문양이 고려시대의 기법으로 추정됩니다. 고란사 주변의 경관은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낙화암에 얽힌 삼천궁년 이야기와 더불어 고란초 등으로 더욱 유명합니다. 높은 암벽에 자리 잡고 있는 대웅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규모로 비교적 큰 사찰건물입니다. 구조적으로 높게 쌓은 화강암 기초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웠는데, 그 기둥은 복련판이 조각되어 있는 부재가 있고, 방형과 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부재들은 백제시대의 초석을 전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붕틀에는 대들보 밑에 우물천장이 있으며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란사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있습니다. 예전에 사이좋은 한 노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노부부는 자식이 없어 늘 아쉬워하면서 살았는데, 자식을 갖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산에서 도사를 만나 고란사 바위에서 나오는 약수에 놀라운 효력이 있다고 듣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새벽에 할아버지를 보내 그 약수를 마시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없고, 갓난아이만 있는데, 그 갓난아이가 할아버지의 옷을 걸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 할머니에게 도사님의 말이 떠올랐는데, 이 약수는 한잔을 마시면 삼 년이 젊어진다고 하였으나 할아버지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할머니는 갓난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정성스레 키웠다고 합니다. 후에 이 갓난아이는 나라에 큰 공을 세웠고, 백제의 가장 높은 벼슬이었던 좌평까지 올랐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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