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 백제의 건국부터 근초고왕 이전까지 알아봤씁니다. 이번에는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 이후의 백제의 왕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제의 전성기
13대 근초고왕 (346-375)
비류왕의 둘째 아들로 백제의 전성기를 만든 왕입니다. 백제는 삼국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근초고왕 때의 백제는 남으로는 마한을 정복하고, 북쪽으로도 영토를 넓혔습니다. 지속적으로 북진하며 고구려를 밀어냈습니다. 고국원왕을 죽이기도 했다. 그리고 동진과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견제했습니다. 또한 일본과도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14대 근구수왕 (375-384)
근구수왕은 근초고왕의 장남으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15대 침류왕 (384-385)
14대 근구수왕의 맏아들로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중앙집권적 국가를 더욱 돈독히 하고,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동진과의 관계는 침류왕때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16대 진사왕 (385-392)
14대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로, 15대 침류왕의 동생입니다. 형에 이어서 왕위에 올랐지만, 진사왕 시기의 고구려는 광계토대왕이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진사왕 8년 광계토대왕은 4만의 병사를 이끌고 백제를 침략해왔습니다. 고구려는 10여 개의 성을 함락하였고, 백제는 고구려에게 많은 영토를 빼앗겼습니다.
17대 아신왕(392-405)
15대 침류왕의 장남입니다. 16대 진사왕은 침류왕이 죽었을 때 너무 어렸기 때문에 숙부인 진사왕이 왕위에 올랐던 것이었습니다. 392년 진사왕이 죽자 아신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건재했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에 패수에서 크게 패했습니다.
18대 전지왕 (405-420)
17대 아신왕의 맏아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전지왕 시기에 백제는 광개토대왕의 거듭된 남하로 전쟁에서 계속 패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대 구이신왕 (420-427)
18대 전지왕의 맏아들 왕위에 올라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 송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20대 비유왕 (427-455)
19대 구이신왕의 맏아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속설로 제18대 전지왕의 서자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비유왕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와 왜, 중국 송나라 등과 우호관계를 형성하며 고구려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는데 많은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1대 개로왕 (455-475)
20대 비유왕의 맏아들로 왕위에 올랐으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강유역 일대를 빼앗겼을 당시 아차산성 아래에서 고구려군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백제의 웅진(공주)시대
22대 문주왕 (475-477)
21대 개로왕의 맏아들로 고구려에게 한강유역을 빼앗기며 475년 10월 웅진 (현재 충남 공주 일대)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했고, 신하들과 백성의 미움을 샀습니다. 그래서인지 병관좌평 해구가 보낸 자객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23대 삼근왕 (477-479)
22대 문주왕의 맏아들로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나이가 어려 왕위에만 올라있을 뿐, 모든 권력을 아버지를 살해한 해구에게 장악당했었다. 그러나 해구가 왕권까지 욕심을 내고 반란을 일으키자 정예병 오백명으로 해구를 죽이고, 반란을 제압했습니다. 그러나 다음해인 479년 11월 15세의 어린 나이에 죽었습니다. 이때는 백제가 많은 혼란을 겪었던 시기입니다.
24대 동성왕 (479-501)
22대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동성왕 15년에 신라에 사신을 보내 신라 왕녀와 혼인을 맺어 혼인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항했습니다. 동성왕은 기존 신하들이 아닌 새로운 세력을 등용하여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백제가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5대 무령왕 (501-523)
24대 동성왕의 둘째 아들입니다. 왕권을 강화하고, 영토를 넓히면서 중국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문화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고구려에 적극적으로 맞서며 백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애썼습니다. 전 영토에 22담로를 설치하고 왕족을 파견하여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습니다. 무령왕은 다시 백제의 중흥을 이끌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백제의 사비(충남 부여)시대
26대 성왕 (523-554)
25대 무령왕의 아들로 백제의 중흥을 이끌었습니다. 성왕 16년 봄에 성왕은 수도를 사비성(지금의 충남 부여)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국호를 '남부여'라고 고쳤습니다. 성왕은 부여를 계승하여 강한 백제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그는 불교를 장려하여 백성들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힘썼습니다. 또한 그는 고구려가 내부적으로 혼란한 틈을 타서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유역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한강 하류 지역을 신라의 공격을 빼앗기자 100년 간이나 지속되었던 나제동맹은 결렬되었습니다. 그는 554년 신라 진흥왕과의 격전에서 전사했습니다.
27대 위덕왕 (554-598)
26대 성왕의 맏아들로 32년간 백제를 다스렸습니다.
28대 혜왕 (598-599)
26대 성왕의 둘째 아들로 즉위하였으나 이듬해에 죽었습니다.
29대 법왕 (599-600)
28대 혜왕의 맏아들로 왕위에 올랐으나 아버지와 같은 운명으로 이듬해에 죽었습니다.
30대 무왕 (600-641)
29대 법왕의 아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무왕은 성왕이후 흔들렸던 백제를 재건하여 신라를 집중 공격하여 40여개의 성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렇게 무왕은 백제의 국력을 회복하였습니다. 삼국유사에는 무왕과 관련된 서동설화가 전해집니다.
31대 의자왕 (641-660)
30대 무왕의 맏아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왕권 강화 정책을 펼치며 백제의 재건을 꿈꿨습니다. 의자왕 초기에는 대야성전투 등 신라에 적극적 공세를 취하며 백제가 다시 부흥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왕권 강화정책이 오히려 지배층의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이런 정치적인 혼란으로 결국 국력이 약해지며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했습니다.
700년에 가까운 백제의 역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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